기가 막힌 타이밍과 행운으로 만난 연수

2025. 1. 18

연수에 어떤 걸 기대하고 왔었는지 돌이켜 보니 “쉬다‘라는 단어에 그저 이끌린 것 같다.
연수를 신청하던 11월쯤에는 꽤나 속이 시끄러워서 날 조용하게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연수 첫날에는 여행가는 기분으로 왔다.
캐리어를 끌고 공기 맑은 곳으로.
도착해서 명상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도 그저 재미있었다.
기존에 경험해 본 명상들과는 달리 무언가를 ’버리고 뺀다‘는 표현이 적극적인 느낌이라 맘에 들었다.

첫날 과 둘째 날에는 무언가를 버리면서도, 그게 분명 내 문제가 맞긴 한데 뭔가 자꾸 겉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버린 건 버린 거고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수요일에 오전 선택 활동으로 명상반에 갔다가 거기서 아차하고 깨달았다.
내가 긴 시간 동안 버리려고 했던, 끊어내기 위해 애썼던 문제를 마주했다.
나의 유년 시절을 내내 아프게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로 인한 내 마음의 혼돈을 잠재우기 위해 애썼던 문제,
오전 명상 시간 내내 그 한 가지 생각만 버렸다.
버리고 버려도 마음에 선명해서 계속 버렸다.
고요하게 가라앉혔던 물이 뒤집어져서 흙탕물이 되어 버린 그런 기분…

연수에 와서 쉬다만 갈 줄 알았는데, 일과가 끝나면 숙소에 돌아와 일기를 두 장씩 빼곡하게 적었다.
드는 생각도 많고 정리할 말도 많고 쓰느라 손이 아팠다.
일기를 쓰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곳에 이때 온 것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었다.
과거에 내 생각들로 인해 힘들던 그 어느 때의 나는 종교나 철학, 혹은 그 외에 세상에 존재하는 치유의 방법들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저건 그저 듣는 사람을 속이는 기만이라고, 그럴싸하고 번지르르한 말로 현혹시킬 뿐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의 나였다면 연수에 신청도 안 했을 것이고, 왔더라도 내내 속으로 트집 잡을 궁리만 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적어도 과거에 비해 수용적이고, 그간의 방법들로 인해 새로운 무언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이 때에 이 연수를 만난 건 기가 막힌 타이밍이고 행운이다.

연수에 와서 내 안의 무언가가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도 심리 상담을 하는 일을 가진 터라 그런 변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환상이란 것을 안다.
애초에 그렇게나 뚜렷한 변화를 꿈꾸고 오진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들여다 볼 기회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여기서 일기를 열 장 이상 써 가게 되었으니 기대보다 엄청 많이 얻어간 꼴이 되었다.

목요일 오전 활동을 끝내고 점심을 먹으로 가는데 잠깐이지만 왠지 묘하게
세상 풍경이 어제보다 선명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는 독특한 느낌을 경험했다.
유독 날이 쾌청하고 햇살이 밝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내 안의 허가 닦여져서 현재를 받아들이는 내 오감이 조금 맑아졌다고 믿고 싶다.
충분히 만끽했다는 말이니까.

또 짧은 기간 동안 만난, 스친 인연인 모든 분들과 함께여서 다행이고 좋았다. 나에겐 충분한 연수였다.

– 경기 **고 전문상담사 구** (2025년 겨울방학 교직원 명상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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